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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음식, 조냥 정신

by 애플2 6/8+ 2025. 6. 8.

해녀 집안에서 나고 자라 해녀 음식을 이어가는 명인이 있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슴슴한 제주 음식, 그 속에 담긴 해녀들의 삶과 '조냥 정신'을 함께 느껴보겠습니다.

 

 

해녀 어머니의 삶을 보고 다른 길을 꿈꿨습니다.

제주에서도 특히 해녀가 많기로 유명한 제주시 하도리에서 진여원 씨는 태어났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평생 바다를 벗 삼아 물질을 했던 해녀셨습니다. 70세가 넘으신 외숙모와 세 살 위 언니 역시 지금도 바다에서 물질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진 씨는 자신 또한 열두 살 무렵까지 물질을 배우며 해녀의 삶을 물려받을 준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해녀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열두 살짜리 어린 여자아이들은 '하군 중의 하군'으로 분류되어 얕은 바다에서 해초나 보말과 같은 것을 따는 일을 했습니다. 반면에 어머니와 같은 베테랑 해녀들은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가 전복이나 소라 같은 귀한 해산물을 채취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처럼, 어린 진 씨에게도 엄마 해녀의 삶은 바다 그 자체였습니다. 주인공 애순이 바다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에게 "점복(전복)이 엄마 딸이야? 왜 또 들어가? 왜! 이럴라면 점복을 낳지, 나는 왜 낳았대?"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진 씨에게 "꼭 내 이야기" 같아서 가슴이 아려왔다고 했습니다. 물질에 매달려 바다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먼저 나와 있던 다른 해녀 어머니들이 허기진 아이들에게 불에 구운 미역귀나 뿔소라를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뭐라도 먹을 것을 줘야 아이들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에 구워 눅진해져 끈적이는 미역귀는 위에 좋고, 소라 껍데기 속 쓴물에는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도리는 땅이 척박하여 농사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었고, 바다만이 기댈 곳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동쪽(하도리 쪽) 여자가 서쪽(애월 쪽)으로 시집가면 부모가 웃고, 남쪽(서귀포 쪽)으로 시집가면 부모가 춤을 춘다'는 말이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남쪽은 감귤 농사로 부유한 집이 많아 딸이 힘든 물질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하며 부모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3대가 해녀인 집안에서 진 씨가 해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데에는 8남매 중 'K장녀의 표본'인 언니의 뒷바라지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언니는 동생에게 "바다에만 있으면 넓은 세상을 볼 기회가 없어. 절대 너는 그러지 마라"고 말하며 동생의 다른 삶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었습니다. 언니 덕분에 여덟 째인 진 씨는 제주산업정보대학교 관광학과에 입학하여 해녀가 아닌 다른 삶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통역사에서 음식 연구가로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언니의 응원과 지원 덕분에 대학에 진학한 진여원 씨는 해녀가 아닌 다른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큰 무대(넓은 세계)에 서려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당시 형편으로는 미국에 가기 어려워 가까운 일본에 눈을 돌렸습니다. 일본어가 좀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어 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당시 한·일 관계가 무르익으면서 제주 성산포 마을과 일본 규슈의 한 어촌 마을이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교류 행사가 열렸고, 일본어 통역사였던 진 씨가 이러한 행사의 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일본 부녀회 일행이 제주 성산포를 방문했고, 마을 어머니들이 '가장 제주스러운 음식을 소개한다'며 전복죽, 빙떡 등 제주 향토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통역을 맡은 진 씨는 우리 음식을 더 잘 소개하기 위해 어머니, 외숙모, 고모 등 가족 해녀 어른들께 음식 조리법을 직접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제대로 알아야만 우리 음식을 외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부녀회 손님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제주 전복죽은 내장까지 함께 끓여 초록색인데, 일본 부녀회는 전복죽이 하얗지 않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맛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매일 해주시는 '별 것 아닌 음식'이었는데, 타지 사람들에게는 '건강하고 맛있는 특별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제주 음식, 특히 해녀 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진 씨는 서너 달에 한 번씩 비행기로 50분 거리인 규슈 후쿠오카시를 오가며 일본 가정식과 제주 가정식은 무엇이 다르고, 생활 문화가 다르면 일상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과 일본의 사찰음식 연구가인 선재 스님과 모리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이 제주에서 한·일 사찰음식 교류회를 열었을 때 통역을 맡으면서 제주 음식에서 고기와 생선만 빼면 사찰음식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간이 슴슴하고 된장을 양념 베이스로 사용하는 점 등이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요리학원을 다니며 한식, 중식, 일식은 물론 떡까지 배우며 음식 연구의 기본적인 바탕을 쌓았습니다. 진 씨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 '옛 문헌'까지 꼼꼼히 뒤지며 제주 음식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제주는 변방이라 여성들의 규방 문화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았지만, 유배 온 양반들의 기록은 남아 있었습니다. 음식에 관련된 단 한 줄의 기록이라도 발견하면, 그 문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련된 다른 기록들까지 찾아 나섰습니다. 9년 동안 제주에 유배되었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 중에는 집에서 보내온 귀한 반찬들이 곰팡이가 슬었지만, 이를 버리지 않고 집 앞 동백 아래에 거름이 되라고 묻어주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진 씨는 금수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았던 추사 선생이 이러한 행동을 했던 것이, 제주 여성들의 '조냥 정신(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절약 정신)'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름대로 상상하고 해석했습니다. 이렇게 음식 연구에 '인문학적인 깊이'를 더하며 음식과 삶, 문화의 접점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슴슴하고 담백한 제주 해녀 음식이었습니다.

진여원 씨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경험한 '제주 음식'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제주 본디 음식은 대체로 '슴슴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대단스럽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인위적인 강한 맛을 내기보다 '자연의 성정대로 자란 식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에는 바다의 맛이, 땅에서 나는 채소에는 흙의 뜻이 담겨 있으니, 갖은 양념에 의존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맛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식재료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최소한의 양념으로 조리하여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제주 음식의 미덕이었습니다. 제주 음식 중에서도 '해녀 음식'은 해녀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독특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녀 음식은 일반 제주 음식보다도 '간이 약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양념이 귀해서 아끼기도 했던 이유도 있지만, 해녀들만의 '속 사정'이 있었습니다. 해녀들은 오랜 시간 차가운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다 보면 '소금물에 입술이 다 헤져서'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매운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보다는 된장, 간장, 소금으로 '약하게 간을 한 음식'이 많았습니다. 이는 재료가 가진 맛의 '순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해녀들은 담백하고 자극 없는 음식을 지으면서 힘든 물질 작업을 견디고 건강을 유지했습니다. 제주의 식생은 해안가, 중산간, 산간 지역으로 나뉘는데,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 시절에는 지역마다 식문화가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해안가 마을에서는 신선한 '자리(자리돔)'를 잡아서 회로 바로 먹었습니다. 하지만 바다와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서는 자리를 바로 먹기 어려웠기 때문에 '젓갈을 담가' 보관했습니다. 나중에 '배지근한 맛(감칠맛의 제주 방언)'이 당기면 젓갈을 물에 넣고 끓여서 체에 거른 물로 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살은 다 삭아 내렸지만, 그 국물에서 깊은 고기 맛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음식은 버릴 것 없이 최대한 활용하려 했던 제주 여성들의 '조냥 정신'이 담겨 있는 지혜로운 음식이었습니다. 진 씨는 2012년부터 애월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여 '푸른 부엌'이라는 이름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주 식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우영팟(토종 텃밭의 제주 방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주 여성들에게 우영팟에서 직접 키운 채소와 열매는 단순히 식재료를 넘어 '소중한 약'이기도 했습니다. 푸른 부엌 마당에는 제피, 댕유자, 토종 감나무, 양하 등 진 씨가 직접 심고 가꾼 식재료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조냥 정신과 함께 자연에서 얻은 귀한 식재료를 활용했던 제주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쉰밥조차 끓여서 묵은 김치와 함께 먹으면 훌륭한 별미가 된다는 조냥 정신처럼, 해녀 음식은 제주의 자연과 해녀들의 강인한 삶, 그리고 지혜로운 조냥 정신이 어우러진 소중한 문화유산이었습니다.